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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대로

아버지 지난 여름 잘 보내셨나요?

아버지, 잘 계셨어요?
오랜만에 찾아뵙네요.
지난 여름 어떻게 보내셨어요?
100년 만에 찾아 온 더위라하니
어쩌면 아버지는 팔십 평생
겪어보지 못한 폭염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 집에도 작은 거지만
벽걸이 에어컨 하나 장만했어요.

각설하고 자주 못 와서 죄송해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송구스러운 건,
5분만 있다 가야한다는 사실이에요.
공직에 30년 넘게 계셨던
아버지는 더 잘 아시잖아요.
어디에 매여 있다는 거,
짬을 내는 게 쉽지 않다는 거,
주말이나 시간을 내야 하지만
나는 그것도 힘들다는 거,
하지만 그런 게 사는 거라는 거,
아버지는 이해하시리라 봐요.
그나마 다행인 건,
일 때문에 오가는 길 그 중간 어디 쯤에
아버지가 계시다는 사실 정도겠네요.

납골당 천정 바로 밑에 모셔진

아버지 영정사진을 보려고 하면
사실 잘 안 보여요.
높이도 그렇고 사진크기도 그래서
눈을 부릅뜨고 봐야
간신히 보일랑 말랑 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때는 할머니처럼
차라리 산소와 묘비가 있는 게
더 낫지 않았겠나 싶기도 해요.

물론 아버지가 여기 충혼당에
계시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 있어요.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죠.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이죠.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내 마음에
이미 아버지는 계신 거죠.
그래도 나란 사람은 말이죠,
머리로는 천국을 지향하지만
눈으로는 작은 유골함을 찾네요.
도마처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봐야
비로소 위로와 안식을 얻는 모양이에요.
아직 믿음이 여물지 못해서 그런거겠죠.

발길을 되돌리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네요.
걱정마세요. 장대비는 아네요.
안전운전하면서 갈게요.
내가 운전만큼은
아버지보다 훨씬 잘 해요.
추석 즈음에 가족들이랑
올 수 있도록 해 볼게요.
그때까지 또 잘 계세요.
큰 아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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